[미국교환학생]
나의 사고방식을 깨고 발전시켜준 감사한 미국유학(2)
미국교환학생컨설턴트 이은수
2015년도 밝은미래교육 미래와 희망 우수 장학생 / 2014년도 9월 미국교환학생 장소영
하지만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똑같았다.
점점 나는 존재감이 없어지기 시작했고 말수도 줄어들었다. 정말 학교에서 두 마디 정도 했다면 그 날은 말을 많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한국에서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주위에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한국 친구들이 너무 보고싶었고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좀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젠 수업시간에 같은 테이블에 앉은 친구들과 말 도 트고 점심시간에 같이 앉는 친구들과도 어느정도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10월 말쯤친구들에게 한국에 대해 알릴 기회가 찾아왔다. 각 주마다 컨퍼런스가 열리는데 호스트 엄마가 코디네이터 이셔서 항상 그 컨퍼런스에 참가했다. 한국에 대해 포스터도 만들었고 한국에서 부모님이 보내주신 한복도 받았다. 마침 컨퍼런스 시기와 교환학생들이 1주일간 각자 나라에 대해 소개할 수 있는 프로그램 시기가 겹쳤다. 그래서 각 수업 선생님들께 양해를 구하고 수업시간에 한국에 대해 설명을 하고 질문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예상 외로 친구들이 많은 질문들을 했고 심지어 수업시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친구들은 한국 전통 의상 한복을 많이 좋아했다.그 후로 친구들은 한국에 대해 많이 물어봤고 궁금해했다. 우리 지역에서 한국인을 찾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 정도로 친구들은 한국에 대해 무지했고 내가 한국에 대해 소개를 하기 전에는 몇몇 친구들이 일본에서 왔냐 중국에서 왔냐 심지어 러시아에서 왔냐고 물었다. 다 아니라고 하면 그럼 대체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 대해 알린 뒤로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들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친해졌다.
사실 운동을 한다던지 클럽활동을 하면 더 많은 친구들을 금방 사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운동을 할 수가 없어 딱히 여러 친구들과 친해질 계기도 없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교환학생 재단에 절 이라도 하고싶은 심정이었다. 또 나는 한국에서 100명이 넘는 사람앞에서 스피치를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스피치를 하게 될 줄도 몰랐다.
첫 번째 컨퍼런스 때 호스트 엄마께서 사람이 많을 거라고 하셨다. 학교에서 한국에 대해 소개를 할 때는 안면이 있는 친구들이였고 많아 봤자 각 반에 30명이 전부였다. 하지만 내가 컨퍼런스에 갔을 때는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호스트 엄마께 화장실에 다녀와도 되냐고 물었다. 대충 봤을 때 100명은 그냥 넘어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앉아계셨다. 내가 과연 저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스피치를 끝마칠수 있는지 부터가 걱정이었다.
그 때 나와 같이 온 우크라이나 교환학생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플렉스 재단 대표로 왔다고 할만큼 영어도 잘했고 적어도 내 눈에는 너무 완벽했다. 그래서 더 떨렸다. 식은 땀 나는 스피치가 끝나자 많은 분들이 박수를 쳐주셨고 스피치가 끝나도 너무 떨려서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런데 컨퍼런스가 끝나고 학교에 돌아왔을 때에는 많은게 변해 있었다. 항상 나는 누군가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렸는데 이제는 내가 아무렇지 않게 친구들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했고 내 주위에는 오래된 친구처럼 편한 친구들이 함께 있었다.
학교 선생님들 또한 너무너무 좋은 분들이셨다.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학교에서 어리버리 할 때 이것저것 많이 챙겨주셨고 미국의 역사 수업을 들었는데 한국역사도 제대로 못하는 내게 미국 역사는 너무 버거웠다. 아무리 들어도 모르겠고 숙제는 산더미였다. 그런데 역사 선생님께서 숙제로 내주시던 자료를 항상 구글 번역기를 사용하셔서 한국어로도 따로 프린트 해서 주셨다. 그리고선 번역이 확실하진않지만 숙제를 하는데 도움이 될꺼라고 말씀하셨다. 정말 너무너무 감동받아서 감사하다고만 연발했다.
미국의 겨울방학은 짧다. 2주정도 였는데 호스트 가족과 러시아 교환학생과 사우스 캐롤라이나로 여행을 갔다왔었다. 사실 내가 사는 버지니아는 대부분이 산으로 이루어져있고 특히 나의 호스트 집 주변은 다 숲이었다. 넓은 들판이 있고 소와 말 닭, 양들이 뛰어노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우스 캐롤라이나로의 여행은 정말 새롭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분위기와 환경이 내가 지내던 곳과는 너무 달라 나름 신선했다.
짧은 방학이 끝나고 다시 새로운 학기를 시작해야했다. 처음엔 너무 어려웠던 불어에 흥미가 생겨 다음 클래스를 신청했고 한국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수업들을 듣기로했다. 그런데 한창 즐거워야 할 시기에 모든게 싫어졌고 귀찮아 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한국에 가고싶어지고 학교에 가서 수업듣는 것도 재미없고 지루했다. 고민하다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연락을 했는데 엄마는 내가 미국생활에 익숙해지니 이제 권태가 왔다고 했다. 내가 즐겨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고 하시길래 알겠다고 했다.
마침 학교에서 뮤지컬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노래를 잘 하는것도 아니고 연기를 잘 하는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흥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호스트 엄마께서 학교 뮤지컬에 참여 하면 더 다양하고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하셨다. 거기다 친구들도 뮤지컬 오디션을 본다고 내게 같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나는 춤도 못추고 연기도 잘 하는게 아니라고 말하자 친구들이 다 괜찮다고 할 수 있다고 격려해줬다. 오디션 당일 날 조를 짜서 연습을 하는데 친구들이 내 연기를 보자 넌 절대 배우는 하지말라고 했다. 내가 그 정도로 심각하나 생각을 하다가 오디션을 봤다. 친구 중에 딱 한명 빼고 다 떨어졌다. 물론 나도 떨어졌다. 막상 떨어지고 나니 서운했다.
생각해보니 한국에서는 더 경험할 수 없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겠다 생각하여 담당 선생님께 백스테이지를 도와도 되냐고 물었다. 그래서 연습이 있는 날이면 밤이 되도록 학교에 남아 있었다. 딱히 크게 할 일은 없었지만 친구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신기했고 대단했다. 두 달 가까이 연습을 하고 공연을 했는데 공연이 끝났을 때는 너무 뿌듯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또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사진촬영 기술을 가르쳐주는 수업을 들었다. 정말 많을 것을 배웠고 무엇보다 한국에서는 접할 수 없는 기회였다. 주제를 정해서 사진을 자주 찍었는데 그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드라마 수업도 들었다. 처음에 수업을 고를 때 드라마 수업대신 수학을 골랐는데 필요 과목이 아니라고 하시길래 드라마 수업으로 바꿨다.
만약 내가 수학을 선택했더라면 지금쯤 엄청 후회하고 있을거같다. 나는 전체 수업 통틀어 드라마 수업이 제일 좋을정도로 드라마 수업을 좋아했다. 친구들이 하나같이 너무 재미있었고 드라마 선생님이 뮤지컬 담당선생님이시기도 했고 연출가이셨는데 내가 하고싶었던 일에 대해 전문적으로 알고계신 분이셔서 많은 이야기도 나눴던 것 같다. 물론 첫수업시간에는 낯설고 무대에 올라간다는 게 너무 부끄러웠다.특히 대본을 들고 동그랗게 모여 앉아 리딩 하는 시간에는 모르는 단어도 많고 발음도 어렵고 말이 꼬여서 난감할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친구들이 자기들은 한국어를 아예 할줄 모른다고 걱정말고 보이는대로 하라며 격려해줬다.
또 나름 잘 지내고 있을 때 문제가 생겼다. 미국에 오기 전부터 우리 가족들은 다른것도 아닌 음식 걱정을 많이 했다. 남들보다 몇배는 많이 먹는 식성에 가족들은 미국에서 내가 굶어 죽는건 아닌지 배고파서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는건 아닌지 걱정이 많았다. 미국에서 먹는 음식들은 정말 맛있었다. 호스트 가족들이 요리하는것을 좋아하고 호스트 삼촌이 야외그릴요리를 즐겨하셔서 매일 맛있는것을 먹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항상 뭘 먹어도 배가 고픈거 같고 간식도 늘 먹어야 하는데 호스트 가족들은 건강을 생각해서 간식도 잘 드시지 않았다. 나는 너무 배가 고팠다. 사실 쌀이 너무 먹고싶었다. 미국에서 한국에서 먹는 쌀을 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뭐라도 만들어 먹고 싶은데 나는 요리를 할 줄 몰랐다. 내가 하는 계란 프라이는 항상 스크램블이 되어 있었다. 불고기가 먹고싶어서 호스트 가족분들에게 만들어 드리려고했는데 그건 무모한 도전이었다. 결국 내가 할줄 알았던 건 이미 가공된 잡채나 라면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었다. 건강한 식품도 아닌데 항상 맛있다고 해주시는 호스트 가족분들에게 너무 죄송했다. 이나이 먹도록 계란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내가 너무 무능하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호스트 엄마는 한국에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꼭 요리를 해달라며 나에게 여러 음식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한국에서는 설거지 한번 제대로 해본적이 없었다. 세탁기를 이용하는 빨래도 세탁기 사용법을 몰랐고 나는 뭘 하든 항상 어설퍼서 그나마 내가 했던 욕실 청소도 한게 한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빨래도 내가 직접하고 식사를 한뒤 설거지도 대부분 내가했다. 그래봤자 그릇을 헹궈서 식기세척기에 넣는게 다 였지만 내가 스스로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모습은 정말 믿기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게 당연한 일인데 왜 한국에서는 엄마가 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특히 나보다 5살이나 어린 호스트 동생들이 집안 일을 하는것을 보고 놀랐다. 겨우 초등학생들이 닭장도 청소하고 아기송아지에게 우유도 먹이는 모습은 정말 충격적이였다. 그 나이때 나는 대체 뭘했나 하고 생각해보았다.
또 나는 벌레나 동물들을 정말 싫어한다. 호스트 집에는 벌레나 쥐가 많이 살았는데 처음 쥐를 발견한 날 내가 집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자 아무렇지 않게 다가와서는 쥐를 쫓아가 쥐꼬리를 잡더니 변기통에 내리는 호스트 동생을 보고 나도모르게 물개박수를 쳤다. 심지어 내가 무서워하자 그 처음 몇일은 내 방에서 같이 잠을 자주기도 했다. 처음에는 벌레 때문에 못살겠다고 너무 무섭다고 하자 한국에서 엄마가 이제 너 혼자 벌레도 잡아야 한다며 파리채를 보내주셨다. 이제는 이상한 벌레를 봐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벌레랑 친해진 것 같다.
정 든 학교도 끝이 나고 다시 한국에 돌아오기 전까지 친구들과 호스트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버지니아 주 재단 교환학생들과 워싱턴 디씨로 여행을 갔다 왔다. 이런 기회를 마련해주신 호스트 엄마께 너무 감사했고 미국에 보내주신 부모님께도 감사했다. 매년 열리는 워싱턴 디씨 벚꽃축제에 갔다왔었는데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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